철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K군에게
(원문 :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22126 )
진태원 편집기획위원/고려대*서양철학
안녕하세요, K군. 날이 무척 추워졌습니다. 서울의 아침 기온이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졌다죠? 어수선한 국내외 정국에 매서운 바람까지 몰아치니 마음이 한층 더 스산해지는 느낌입니다.
얼마 전 메일을 통해 앞으로 대학원에 진학해서 철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조언을 부탁한다고 말씀하셨죠? 제 강의 시간에 K군이 했던 발표나 기말 보고서의 우수함을 생각하면 두말없이 적극 진학을 권장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지금까지 여러 학생들을 가르치고 접해왔지만, K군처럼 우수한 사고력과 글쓰기 능력을 겸비한 학생은 좀처럼 만나기 어려웠습니다. 깊고 넓은 학문의 세계에서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고 뜻을 펼치기 바랍니다.
이렇게 권하고 싶은 것이 제 본래의 마음이겠지만, 실제로 제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은 웬만하면 다른 길을 택해보라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권하는 것은 과연 한국에서 학문을 하는 것, 특히 인문학을 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심각하게 회의를 품게 됐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K군처럼 홀어머니에 가정형편이 넉넉지 않아서 국내에서 석ㆍ박사과정을 마쳐야 한다면, 또 서울대 학부 출신도 아니라면, 평생 밥벌이도 제대로 하기 힘든 학문을 하기 위해 과연 십 수 년의 고된 수련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을까 걱정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지금 K군의 머릿속은 다음과 같은 생각으로 가득차 있을 것 같습니다. 외국에서 공부하든 국내에서 공부하든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될까?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해서 무언가 새로운 관점을 세우고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인문학적으로 해명하는 데 나름대로 기여할 수 있으면 되지. 그리고 학자의 삶이란 게 풍족한 삶일 수는 없으니까 그냥 굶주리지 않을 정도로 생계만 꾸릴 수 있다면, 다소 가난하더라도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서 사는 게 더 보람 있고 행복한 삶이 아닐까.
만약 이런 생각을 품고 있다면, 그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고 또 위험한 생각입니다. 우선 국내 학계에서는 외국에서 공부했느냐 국내에서 공부했느냐가 큰 문제가 된다는 점입니다.
서울대 학부 출신도 아니면서 국내에서 공부하겠다는 것은 이미 졸업 후에 정규직 취직을 포기하겠다는 말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분야의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학계의 비정규직의 삶이란 고달프기 짝이 없습니다. 여러 명의 비정규직 교수의 가슴 아픈 자살이 그것을 단적으로 말해줍니다. 저는 혹시 제가 학문의 길을 권한 누군가가 훗날 이런 참담한 삶의 끝자락에 서게 되지 않을까 정말 두렵습니다.
어찌어찌해서 다행히 취직이 된다 하더라도 한국에서 인문학하기란 그리 보람 있는 일이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한국 학계는 한국 사회의 다른 어떤 분야 못지않게 신자유주의적 체제로 철저히 재편되고 있는 중입니다. 학계의 신자유주의는 크게 두 가지 구호로 집약됩니다. 단기 수익성을 높여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라.
다른 학계에 비해 현저히 뒤처지긴 하지만 인문학계도 나름대로 이 두 개의 지상명령을 충족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정규직 교원이거나 아직 정년보장을 받지 못한 교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1년에 많게는 10여 편에서부터 적게는 3~4편에 이르는 등재지 논문 쓰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수익성의 학문적 기준이 1년에 몇 백 퍼센트의 업적을 남겼느냐로 표시되기 때문에 질적 우수성, 독창성이나 깊이 같은 기준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인문학하기란 논문 작성 기계의 삶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 대신 질적인 평가는 외국 학계에 위임됩니다. 곧 어떤 학자의 질적 우수성은 일차로 그가 외국(=미국)의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로 측정되고, 그 다음에는 그가 외국의 저명학술지에 논문을 실었느냐로 평가됩니다. 따라서 우수 학자의 일차 요건은 유학 경험, 영어로 글 쓰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국내 대학 출신이든 외국 대학 출신이든, 또 동양어권이나 유럽어권 유학생이든 영미권 유학생이든 가리지 않고 관철되는 철의 법칙입니다.
K군, 그러니 영미권의 유명 대학원에 진학할 만한 경제적 능력이 되지 않는다면, 간곡히 권하거니와 학문의 세계에 발을 디디지 말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럴 만한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될 수 있으면 인문학, 특히 철학은 하지 말기 바랍니다. 그 아까운 재능과 인생을 낭비하지 말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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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고 잠시 공감이 지나쳐 욱해 쓴 글
아, 이 글, 답답한 현실과 재능을 현재의 대학원과 같은 곳에서 썩히지 말라는, 그래도 이 글을 쓰는 이는 번역도, 전공학문에서도 정치적 발언에서도 한몫해내는 정교하면서도 진지한 학자-그의 작업을 통해서 느낀 인상에 불과하지만-인데, 동시대의 젊은 좌파철학자의 젊은이들의 조언에서 자신이 겪기도 한 어떤 벽 앞에서의 좌절의 눈물과 땀이 처절히 배어있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저도 서울대학부도 아니고, 자라오면서 특별히 주목받을만한 재능도 없는 자로서, 오로지 혼자만의, 무턱대고 어떤 것을 그저 더 알고싶다, 그 무엇보다 재밌구나, 즐겁구나란 일종의 사치와 같은 결론에만 의존하여, 대학원비용을 감당하면서도 굳이 학위를 딸 필요가 있는가, 그 학위를 따서 용케, 학자간의 학문의 존재는 하는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있을 순수성(정말 진리를 탐구하며 갈구할 뿐 아니라 현실을 바꿔나가는 지혜와 실천이 결합한 어떤 상태)을 지켜나가면서도 학자간의 인맥과 네트워크간 정치, 외교사이를 오가며 어떤 자리를 얻는다한들, 그것이 내가 하고자 한 공부의 질과 무슨 관련이 있겠는가, 또한 관련이 있다면 나는 어떤 거리를 유지하며 정체성을 확보할 것인가, 그것을 위한 내적 의지와 힘이 과연 있는가, 고민하며 포기하던 시절이 있어 가슴이 아픕니다. 타인도 인정하는 재능이 있다면 그런 젊은이는 더욱 더 괴롭겠지요, 대학원이 아닌 아카데미를 전전하며 일관한 스승과 동료 없이 공부한다는 것은 나이먹어가는 전업주부로서 과연 가능한 것일까도 싶지만, 오늘도 그저 개인적으로 목표와 양을 설정하여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조금씩이라도 매일 책을 정해 읽고 생각하는 것 밖엔 도리가 없지요. 간혹 온갖 강연이나 세미나를 쫓아다니면서 만나게 되는 순간순간의 스승과 동료만을 벗삼아 표류하듯이 책과 책 사이를 오갑니다.
얼마 전 뒤늦게서야 고작 글쓰기와 IT계통 계약직을 전전하면서 최대 100만원대의 수입을 올리면서 간신히 석사과정을 끝내고, 대학원박사과정에 들어가기로 결정, 합격한 친구를 축하하면서 인터넷상에서 달린 여러 댓글중, 최소 3-4천만원의 빚은 피할 수가 없게 되었구나면서 염려하는 친구들에게 명랑한 답글을 보내는 당사자에게 기쁨과 부러움, 씁쓸함을 동시에 느꼈더랬지요. 그 친구는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능력의 탁월함과 연구주제의 희소성에 의존하여 그나마 성장의 안전판을 확보한, 나름 유리한 입지(?)의 친구입니다.
지금의 대학-대학원에 생산하는 지식인과 전문인 양성의 주도권은 이미 신자유주의 시장경쟁을 중시하는 미국중심의 학제가 분야를 가리지 않고 거의 고착되었고, 교육을 통한 신분상승은 분명 차단됐으며, 교육환경을 조성하고 누리는 것조차 빈부의 격차를 반영하는 현실, 그 속에서 공부할수록 빚을 지면서도 주변에 숱한 젊은 대학원생들이 앞뒤가 고립한 대학원을 벗어나 다른 공부할 곳을 스스로 구성하고 만들다가도 결국 좌절해서 다시금 대학원체계로 끌려들어가거나, 좌절하거나, 결국은 학원이나 과외같은 취업 혹은 임금노동자로 겸업을 하며 빈곤에 내몰리는 현실, 그런 환경의 선후배동료 대학원 석박사과정들을 자주 봅니다. 자신의 열정과 노력과 진정성으로 그 현실의 어려움을 뚫고 학문을 하라고 권하기엔, 그래도 진중하고 능력있는 중진의 선배학자라도 감히 시작하라고 권유할 수 없는 세상이죠. 누가 비정규직, 계약직, 100만원 미만의 생계가 확실시되는데, 그 일을 열정과 능력과 패기만 갖고서 네 젊음을 소비하라 조언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넌 할 수 있어란 말이 대학만 졸업해도 기천만원의 부채로 시작하는 젊음에게 너무 가혹한 조언이 되고 말았어요. 이제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그건 사기와 같은 말이란 걸 우리 모두는 잘 알지요. 그런 세파에 요령있게 적응하는 능력으로 전환하여 잘 발휘하면서만 살며 만족하는 걸로 꿈을 잃어도 그 개인을 결코 원망하고 미워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적응에 급급하게 만드는 세상에서 조금이나마 자신을 지켜 어떤 방면에서라도 자기 자리를 구축하고 잘 살기를 조심스럽게 바랄 수 밖에 없지요. 그렇게 네 재능을 썩힐만큼 가치있는 곳이 아니라는 조언, 그것에 가치와 위안을 두고, 마치 대학입시도 거부하는 소수자처럼, 대학도 가망없다 싶어 자퇴해버리는 대학생들처럼, 대학원생도 그런 존재들과 움직임이 있다는, 그보다도 소극적이고 그만큼 좌절뿐이라지만, 것으로 조금의 힘을 얻어가려 합니다. 간혹 많은 이들이 가는 길을 '버리는' 것이, 그런 집단적이면서 수세적이지만 나름 주체적인 선택이라도 결국 어떤 결과를 낳지 않을까, 그 어떤 결과가 그런 선택을 했던 이들이 그래도 마음 저 깊숙한 어떤 점에서 바랬을 어떤 다른 세상을 향한 것이기를. 진태원의 표면상 부정적인 조언을 읽고 단순히 기운을 잃거나 좌절하는 기분에 빠져드는 것 아닌 모든 분들에게 보다 힘이 나는 긍정적 역설의 기운이 머물기를 진. 정. 바랍니다